그냥 하는 얘기들/200629~220328 내 군생활(일기)

211021 맞선임이 집에 간 날

RyanKwon 2021. 10. 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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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부대에 처음 왔을 때 내 맞선임은 누굴까 정말 궁금했었다. 아무래도 조금 군대에 늦게 왔다보니 나랑 나이차가 많이 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착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처음 일주일동안은 주임원사기간이라고 해서 이것저것 교육도 받고 신상기록부같은것도 적고 근무지에 상번을 안했다.(공군은 출근을 상번이라고 한다) 그래서 처음 오자마자 맞선임이 누군지 알 수는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처음으로 맞선임이 자기 동기랑 같이 나를 보러 왔다. 그 때 긴장한 채로 경례를 하고, 양 주먹을 무릎위에 두고 앉아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 기억나는건, 생각보다.. 내 맞선임은 날 보러왔지만 내게 말을 걸기보단 날 앞에두고 동기와 둘이 대화를 하고선 갔다. 그리고 다시 날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뭔가 위에 글만 보니까 사이 안좋았던 선임이 간건가? 싶을까봐. 대충 친했던 맞선임이 집에 가서 헛헛하다는 내용입니다.ㅋㅋ)


그렇게 주임원사 기간 일주일이 지나고 상번을 했다. 부서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특기 맞선임은 나랑 4기수 차이(공군은 기수제이고 4기수면 대충 4달 조금 안되게 입대일 차이가 난다)였고 부서 맞선임은 나랑 1기수 차이였다. 그 둘은 이미 정말 친해보였지만... 그와 별개로 부서 맞선임도 나랑 같이 전체적인 교육을 같이 들었고 거의 동기처럼 지낼 수 있었다. 근데 사실 이때 기억은 잘 안난다. 맞선임(이 글 전반에서 말하는 맞선임은 특기 맞선임이다)이랑 이때 별로 안 친했어서 쓸 내용이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냥.. 이때에는 너무 정신이 없었어서 기억이 잘 안난다. 그래도 맞선임에 대해서 기억나는게 있다면 맞선임이 나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식사 한번을 같이 한적이 없었고 외출때 같이 나가자고 한적도 없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단 한번 내게 먼저 말 걸어준 적 없었다.(지금 생각하니까 서운하네 ㅡㅡㅋㅋ) 나는 친해지고 싶어서 말도 많이 걸고 했는데 대화가 많이 끊겼던 기억이 난다. 한번은 전보단 조금 친해진 것 같아서 농담을 했는데 나한테 화냈던 적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한.. 3달가량은 거의 대화도 안 한채로 후임을 맞게 됐다.

뭔가 조바심이 났다. 후임이 새로 들어올 때까지 아직도 맞선임과 친해지지 못했다니, 설마 앞으로 아직도 일년은 더 봐야하는데 그때까지 이 상태이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해질 거리를 찾을 수가 없었다. 뭔가 부대에서 날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껴졌고 나와 맞선임 사이는 시간이 지나 조금 익숙해진 느낌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멀어지는 느낌이였다. 그리고 역시 난 맞선임과 친해질 수 없나보다, 체념하기도 했다. 우리 부서에 다른 특기 맞선임/맞후임도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아보였기 때문이다. 그 후임 분은 내가 부대에 오고 얼마 안돼서 상병을 달았는데도 자기 특기 맞선임에게 아직도 자주 혼나고 했었다. 그리고 역시 일로 엮여있는 관계는 한쪽이 일을 못하면 상대가 해야하니까 아무래도 친해지기 어려우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선임과 주식얘기를 조금 하게됐다. 작년에 워낙 주식이 핫했기도 해서 부대 내에서 주식얘기를 안 하는 사람을 찾기가 힘든 정도였다. 그리고 나도 첫번째 휴가때 주식계좌를 열어둔 터였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부서 사무실에서 대화를 하게 됐다. 특기 자체가 워낙 할게 없어서 다른 특기의 부서원들이 나가서 일을 할 때에도 우리는 사무실에 앉아있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는 아직 맞선임이 공부할때가 아니였어서 둘이 대화를 할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게 주식 얘기를 조금씩 하게되고 사람들의 관심이 주식에서 코인으로 넘어가면서 코인 얘기도 하면서 우리는 전보다 가까워지게 됐다. 이제 막 와서 교육받고있던 후임얘기도 조금 했던 것 같은데 이 부분은 잘 기억이 안난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안하지만 나는 그때 선임이 후임을 안 챙겨주고 후임이 먼저 친해지려고 노력해야하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나도 그랬기때문에. 위에서 누구하나 먼저 친하게 지내자고 다가온 선임이 없었고 그게 우리 부대의 분위기였다. 그리고 특기 후임이 곧 온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렇게 새해를 맞게 되었다. 이게 8월 말부터 12월까지, 약 3달간의 이야기이다.


처음이 어렵지, 우리는 주식과 코인얘기를 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 물론 6살 가까이 나이차이가 나다보니 서로 형동생하는 사이까진 아니였다. 맞선임은 불편하다며 내게 ~요 라는 말투를 썼고 나는 선임으로서 존대했다. 그래도 농담도 서로 많이 하고 1~2월부터는 꽤 편한 사이가 됐던 것 같다. 그렇게 3월이 되고 상병을 달았다. 2월 중순 휴가가 몇달간 막혀있다가 풀리게 돼서 부서원들이 몇명씩 휴가를 나가게 됐는데, 상대적으로 후순위였던 나와 맞선임은 늦게까지 순번을 기다리게 됐고 이 때 군생활에서 훈련소 다음으로 힘든 시간을 둘이 겪게 된다. 우선 우리 부서는 두명씩 휴가를 내보냈는데 2주 휴가에 2주 격리가 겹치면서 2주동안 나랑 맞선임이 당직/근무를 반복해서 서게 됐다. 낮에도 혼자 상번을 하다보니 몇명이 해야하는 일을 혼자 해야해서 정말 힘들었다. 이 때에는 서로 상번/하번할때에만 얼굴을 잠깐 보는 정도였지만 힘든걸 서로 알아서 이 때 친밀감이 더 쌓였던 것 같다. 서로 필요한 말이 있을 떄에는 컴퓨터 메모장에 농담을 섞어 글을 써놓곤 했는데, 꽤 친해졋던 3월까지도 나를 ‘권씨’ 이런식으로 부르는게 이상해서 내가 ‘언제까지 권씨라고 부를겁니까’라고 써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다음날 메모에는 그럼 형이라고 할게 형도 말 놔 라는 식으로 맞선임이 글을 써놨던 것 같다. 몇달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친해져야하나 막막했는데, 이렇게 맞선임과 친해졌던 과정은 그 당시 힘들었던 당직-비번의 연속에 힘이 됐었다. 물론 나는 이 이후에 더 힘들었다. 사이에 부서 후임이 오면서 내 휴가는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 순번까지 밀리고 나와 아직 일이 서툰 일병 2~3호봉 후임들만 2주간 남게됐던 것이다. 나는 막 상병1호봉이었던 때라 대부분의 일을 할 수 있긴 했지만 아직 혼자 애들을 가르치면서 부서 전체의 일을 맡기에는 조금 버거웠다. 뭐.. 이건 맞선임이 관련된 얘기는 아니지만, 이 때 내가 후임과 조금 사이가 안 좋아지면서 그리고 맞선임이 약간 후임편을 들면서 조금 서운했었다. 그런데 이 때 내가 너무 힘들었어서 후임의 행동을 과대해석한 점이 있다는걸 지금은 인정해서, 음.. 그냥 그랬을 수 있다 싶은 부분이다. 아무튼, 그렇게 2주간, 내 개인적으로 훈련소 다음으로 힘들었던 기간을 마치고 나도 휴가를 나가게 됐다.


휴가를 나가고 나도 2주간 격리를 하게 됐다. 이 때에는 맞선임이 가끔 자기들 회식하고 남은 빵을 가져다주고 또 bx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다주기도 했어서 뭔가 으쓱하는 기분이 들었다. 같이 격리실에 갇혀있던 친구들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너네는 선임이랑 이정도로 친하진 않지? 나는 맞선임이 이런것도 따로 사다준다고! 하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생겼다. 다만 이 즈음에 그리고 격리 끝난 직후 내 특기 맞후임과 내 관계가 너무 최악이였어서 이 때는 뭔가 맞선임한테 서운한게 많이 생겼었다. 왜냐면 세명이 같은 특기였는데 내가 뭔가를 모를 때 맞선임에게 물어보면 맞선임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나를 좀 강하게 키웠었다.(다만 이 부분은 내가 오기전에 맞선임은 더 강하게 키워져서 내가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내 맞후임이 뭔가 일을 실수하면 내가 그 똥을 치우고 그게 그 위까지 안 가니까 뭔가 내가 맞후임한테 뭐라고 하면 맞선임이 후임편을 들곤 했어서 뭐랄까.. 이부분은 서운했다.(물론 이부분도 맞선임이 나중에 사과했다.ㅋㅋㅋㅋ자기는 나한테 엄청 뭐라해놓고 나는 못하게 막았다고ㅡㅡ) 윗 단락에서 언급했던 것의 연장선이다. 물론 이게 한 4월 말 정도이고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맞후임을 나나 맞선임 급으로까지 키우는건 살짝 포기하게되면서(사실 위에 선임이 많으면 그렇게 되기가 힘들다.) 5월부터는 부서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이 즈음부터가 내가 맞선임과 엄청 친하다고 느끼게 됐다. 처음에 언급했던 부서 맞선임이 특기 맞선임과 작년엔 엄청 친했었는데 내가 맞선임과 엄청 친해지면서 그 둘 사이가 살짝 멀어지게되는 정도였다. 물론 그룹으로는 서로 같이 친한사람이 없었지만 우리 둘은 정말 친했다. 매일같이 상번하면 사무실에 앉아서 떠들었고 간부님들도 ‘너네는 매일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하다가 내가 오면 멈추냐’라고 하곤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 특기 맞선임이 뭔가 일을 내 특기 맞후임에게 시켜보고 살짝 실망하는 일이 생기면서 이 이후에는 거의 서로 웬만한 일에 이견이 없는 수준이였다..라고 나는 평가한다. 물론 맞선임이 나보다 많이 어리기도 하고 어쨋든 4기수 차이나는 선임이라 내가 많이 말을 들어준 부분이 있다. 그래도 뭐 많이 친했던건 부정할 수 없다. 이게 6월 중순까지의 얘기이다. 1월부터 6월 중순까지의 얘기가 기간에 비해서는 엄청 많지 않은데, 그 이유는 정말 별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맞후임 이슈를 포함하더라도 단 한번도 사이가 틀어진적도 없고 그냥 같이 있으면 즐거웠다.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맞선임이 병장을 달고 조금씩 사람들이 전역하면서 맞선임도 전역일이 가까워지게 됐다. 100일정도 남았을 무렵부터 맞선임은 밖에서 입을거라며 옷도 사고 미래를 준비한다며 공부도 하고 그랬다. 그래서 오히려 막판에는 같이 많이 못 놀았다. 같이 운동했던 7월즈음이 가장 자주 같이 놀았던 느낌? 근데 나도 공부할게 있어서 뭐 나랑 안 놀아준다고 서운했다거나 그런건 아니다. 다만 맞선임이 엊그제 병장을 단 것 같은 기분이였는데 어느새 전역까지 50일이 남았다고 하며 매일같이 나갈 날 만 세곤 했다. 조금씩 실감이 났다. 그리고 맞선임 기수의 사람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갑작스럽게 맞선임이 나가게 됐다. 아, 갑작스럽다는게 아파서 나가게 됐다거나 그런 뜻은 아니다. 다만 내게 있어서 맞선임은 부대에 없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였다. 그리고 맞선임 없는 부서는 상상해본적도 없었다. 처음 부서에 왔을 땐 저 사람이랑 지겹도록 보겠구나 하는 생각이엿고 저사람이 나가야 나도 나갈 날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그런데 뭐랄까, 연습도 없이 그냥 전역일은 왔다. 하필 그리고 맞선임이 나가기 전날 내가 당직이라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내가 근무 올라가기 직전에 하게 됐다. 그냥 고마웠다, 재밌었다, 수고했다는 말 정도로 마지막 우리의 대화는 끝이 났다. 어쩌면 지금 보는게 마지막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는곳도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취미 관심사도 다른데, 같은 부대안에서 맨날 본다는 이유로 친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우리가 전역하고도 만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서운하다. 군대란 참 개인에게 박한 곳이다. 한 부대안에 몇달에서 일년 넘게 같은 사람들과 잠잘때까지 같이 있게 해놓고는 결국 헤어지게 한다. 그리고는 또 거기에 적응하라고 한다.


맞선임과 함께 상번하면 그냥 그 날이 걱정되지 않았다. 부서 일에 관해서 서로 거의 대부분 알고있을거라 믿고있었고 설사 처음 겪는 일이 생기더라도 내가 없으면 상대가 일을 어떻게든 해결할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내가 깜박한 일은 쟤가 하겠거니-. 둘이 같이 있을 땐 못 느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때는 그랬던 것 같다. 전역식때 맞선임이 이런 말을 하면서, 자기 똥고집도 묵묵하게 받아준 후임들한테 고맙다. 날 쳐다보더라. 맞긴 하지.ㅋㅋ


아 헛헛하다, 마음이. 갈 사람 보낸거고 나도 이제 갈 날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하는 하나의 이벤트를 겪은것 뿐인데 후련하지가 않다. 지난 시간이 아쉽진 않지만 맞선임과 같이 상번해서 같이 떠들고 같이 일했던 시간은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동기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언제 친해지지?했던 때부터 시작해서 상번하면 전날 주식코인장 얘기했던거, 같이 제설하고 제초하고 운동하는데에 데려가서 같이 운동하고 밥먹고 책정리하고 인터넷으로 옷구경하던 것 까지. 자기 뱃살 빼고싶다고 갑자기 배를 까서 보여주길래 뭐하냐고 욕했다가, 나도 조금 이따 까서 보여줬더니 눈갱이라고 했던 기억이 갑자기 난다. 어차피 샤워하면서 볼거 다 본 사인데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모르겠다.


이 글을 너가 볼 일은 없겠지만, 수고 많이 했다. 너도 이제 갈때 됐지ㅋㅋ 앞으로 하는 일마다 잘 되길 빌게, 진심으로.


+ 만약 나도 내가 먼저 전역하는 입장이였다면 아쉬운 마음보다 후련한 마음이 더 컸을 것 같다. 이래서 후임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하나봄;;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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